-옥스퍼드 대학교 한인 학생 및 동문, 연구자 53인 공동 성명
한밤중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지난 12월 3일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반민주적 폭거가 국정 혼란을 초래한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는 말 이외에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드러난 정황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윤석열과 그의 측근들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였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수부대를 동원해 국회 봉쇄를 꾀하고, 국회의원⠂언론인⠂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체포조를 운용하였으며, 계엄 포고령을 어긴 자에 대한 처단을 운운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윤석열은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지어는 북한과의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을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계엄을 선언하기 몇 달 전부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휘하에 평시와는 다른 각급 부대의 훈련이 진행되었으며,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을 논의했다는 제보들이 군 내외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국민의 목숨까지 담보로 하려 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윤석열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스스로가 초래한 정치적 위기의 해소였습니다. 지난 총선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의심을 품고 있었던 그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또 다른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병력을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자신을 비판하던 정적을 제거하려 하였고, 계엄사 포고령을 통해 의료 개혁에 반대하던 전문의들의 복귀를 명령하였습니다. 계엄이라는 억압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의 독선적 주장을 일거에 관철하려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려 했던 윤석열의 모습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통해 우리가 접한 익숙한 독재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12.3 친위 쿠데타 시도 이후, 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게다가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12월 7일 아침, 윤석열은 2분도 채 되지 않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당과 총리에게 자신의 권한 및 국정 운영을 일임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단체로 퇴장하였으며, 그로 인해 ‘정족수 미달’로 탄핵소추안 투표가 불성립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무 유기이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의 무책임한 결정에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회 앞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윤석열의 탄핵을 요구하던 국민들의 목소리는 무색하고 또 무색해졌습니다.
그렇게 탄핵이 무산된 다음 날 아침,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공동 담화를 열어 대통령이 직무에서 배제되었음을 ‘선언’하고, 향후의 국정을 국무총리와 당이 협의해 운영하겠다는,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었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한해 국무총리의 대통령 대리 권한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현직에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총리, 혹은 그저 여당 대표에 불과한 한동훈 대표가 대행하는 것은 반헌법적인 행위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그렇게 쉽게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이양될 수 없으며, 쿠데타의 공범과 한 개인이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입니다.
윤석열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이며, 정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주요한 결정의 최종 결재권자입니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직에서 물러나거나 탄핵당하지 않는 한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의 권한은 버젓이 살아있습니다. 지난 며칠간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윤석열은 수차례에 걸쳐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덕수와 한동훈이 선언한 대통령의 직무 배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격 없는 그들은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말장난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친위 쿠데타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국가 권력을 자신들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을 두고만 볼 여유가 더 이상 없습니다. 헌정 질서는 이미 무너졌고,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불안에 떨며 눈을 뜨고,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쿠데타 세력에 동조한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뜻을 외면한 채 최소한의 조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마저 안된다며, 자신들만의 정치적 셈법을 이야기합니다. 국민의 주권이 더 이상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공동체이며, 동료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책무를 느낍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연대를 가로막을 수 있는 국경은 없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해나갈 때 우리는 모두 혼자가 아닙니다. 막막하고, 무기력하고,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성명서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거리의 동료 시민들에게, 해외에서 분노하고 있는 동료 한국인들에게, 또 어딘가에서 부당한 억압에 숨죽이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가서 닿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일구는 힘은 맞잡은 우리들의 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믿으며, 우리는 이렇게 외칩니다.
친위 쿠데타 주범 윤석열과 그 공범들을 체포⋅구속하라
여당은 윤석열의 탄핵에 즉각 동참하라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쉬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주시하여 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 학생 및 동문, 연구자 53인 (가나다 순)
권오윤, 김수지, 김영채, 김예원, 김우희, 김재영, 김주은, 김지원, 남윤수, 라연주, 마준석, 문채현, 민현홍, 사혜원, 서*정, 손윤, 엄선진, 여현정, 오소영, 온성권, 원지우, 이영서, 이윤지, 이재영, 이재은, 이종호, 이한구, 이한빛, 이휘준, 임진희, 장명준, 전민준, 전민지, 정*민, 조성준, 조윤서, 조진형, 채상원, 채희찬, 최규연, 최혜령, 한재인, 한주영, 한*원, 허정은, 홍다솜, 황인준, 황지연, Andrew Gambardella, Sangwoo Kim 외 3인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