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공수부대가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았습니다. 역사책에서나 읽었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교환학생 친구들을 진정시키고, 외신을 통해 소식을 접한 외국 친구들의 안부에 답장하며, 누군가에게 한국을 대표하여 이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습니다.
애증할지언정 단 한 번도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내 나라 대한민국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펜을 듭니다.
2년 전, 159명의 국민이 서울 한복판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에게 대통령은 스물 다섯 번의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데 재정의 문란과 정부의 부패는 그칠 줄을 모릅니다. 진정으로 체제 전복을 기도한 이는 누구입니까?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직보하여 제1공수특전여단을 국회에 투입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고 회의 소집을 방해하였습니다. 그 자체로 이미 내란죄입니다. 그의 눈에 국민의 삶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십스럽습니다.
분노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목이 터져라 분노해봤자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현실이 환멸스러웠습니다. 2022년 3월 9일 이래 1002일 동안 침묵하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반성합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이제라도 멈추고자 합니다.
헌법에서 요구하는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실패하면 반영이지만 성공하면 혁명입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이루고 싶었던 당신의 ‘행복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건 혹시 당신과 그녀에게만 행복한 나라는 아닙니까? 국정이 마비되고 국민의 한숨이 늘어난 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입니다.
존경하는 학우님들과 교수님들, 모든 고려대학교의 구성원과 더 나아가 모든 국민 여러분. 4.18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은 고려대학교의 학생이자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드립니다.
미약한 목소리는 내는 데 함께 해주십시오. 우리 모두 불완전하지만,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내일의 세상을 오늘보다 무엇 하나라도 낫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주십시오. 개인의 안위, 사회의 출세와 경제적 성공, 저마다 가슴에 어떠한 목표를 품고 있더라도 좋습니다. 그 마음에서 딱 한 조각만 덜어서 여전히 사회의 진보를 굳게 믿는 제 철없는 신뢰에, 늦은 밤 계엄령 선포 소식에 국회로 뛰쳐나간 수많은 이들의 절박함에 함께 해주십시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22학번 이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