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한 달하고도 반이나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16명의 실종자가 바다 속에 있고, 288명의 희생자과 172명의 생존자의 가족들은 방치되어 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동안 바뀐 것은 실종자 수와 희생자 수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무척이나 슬퍼했고 분노했으며, 허망한 죽음 앞에 무력했고 자책했다. 그러나 정작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아직도 뻔뻔하게 머리를 들고 다니고 있으며, 그 누구도 무엇 하나 해결하지 않고 있다. 만약 조금이나마 사고 해결에 진전이 있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영정사진을 들고 진도에서·안산에서·청와대 앞에서·국회에서 밤을 지새우며 울부짖었던 피해자 유가족들이 해낸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해온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사고 발생부터 후속처리, 언론보도까지 철저하게 돈이 사람보다 앞에 놓였다. 그리고 이 나라 정부와 공권력은 이를 위해 복무하고 있다. 폐기처분되었어야 할 선박의 수명 연장, 무리한 선박 증축과 화물 과적, 무책임한 저임금·비정규 선원 고용 등 세월호 사고를 일으킨 수많은 요인들은 모두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 인명구조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민간업체와의 독점계약,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언론들의 보도 등 사고를 대형으로 키운 요인은 모두 ‘이윤의 창출’을 위한 것이었다. 이는 지난 몇 십년간 들어섰던 정부의 일관된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시책에 의해 가능했으며, 공권력은 이들에 반기를 드는 자 누구든 – 그것이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건 누구건 – 가로막고 잡아가두며 정권을 비호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해온 이 나라의 전통이자 관례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군사독재시절이건 민주정부 시절이건 언제나 우리에겐 ‘경제성장’이 ‘인권’이나 ‘생명’보다 우선시되어왔다. 그렇게 해도 별 일 없을 거라고 믿고자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는 수백 명의 사람이 생매장 당하는 것을 손 놓고 생중계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오늘이다. 더불어 서강대학교는 그 역사를 만드는데 앞장서왔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구성원이자 서강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이 사회에 절망했다.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우리가 정말 국민입니까’라고 절규해야 했다. 국민의 생명을 돈으로 저울질하는 국가는 이미 국가의 자격이 없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기준으로 이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그 시작일 것이라 믿는다. 이조차 이행할 수 없는 정치권력이라면 역사 앞에 겸허히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국회의 모든 정치권력에게 요구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는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요구를 조건 없이 전면 수용하라. 성역 없는 진상조사만이 희생자들의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 사찰, 평화적 추모 집회·시위 강경진압 등 초법적인 공권력 남용을 중단하고, 공권력 남용의 책임자를 처벌하라.
셋째.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종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조치를 철회하라. 국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생명이 이윤보다 우선이다.
6월이다. 1987년 6월 이 땅의 국민들은 군사독재의 억압을 깨고, 거리에서 ‘개헌’과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이 땅의 역사적 진보는 언제나 “가만히 있으라”는 세상의 명령 앞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선언과 행동 속에 이루어져왔다. 세월호 사고는 돈을 잔뜩 끌어안은 채 침몰하고 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세월호 이후의 역사’는 그 이전의 역사와 달라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2014년 6월 5일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는 서강대 학생·동문·청소노동자 등 공동선언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