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문 전문

대통령 탄핵 시국에 관한 우리의 입장

3월 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로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다. 국회가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시킨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경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돌이켜 보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국민들의 뜻을 모아 선출한 대통령 그리고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는 국회라는 것이 모두 지난 수십년간 우리 국민들의 피 흘리며 싸워서 얻어낸 고귀한 결과물일진대, 오늘날 정치권이 국민을 배반하고 정쟁에 골몰하던 끝에 헌정질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은 우선 법리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탄핵사유로 제기된 몇 가지가 국민들에게 국정중단을 감내하라고 강요할 만큼 중대한 요인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는 물리적 충돌이라는 추태를 연출하면서까지 탄핵소추를 강행하였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한 행위였다고는 결코 믿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횡포요, 적법성을 가장한 채 민주주의 원칙을 우롱한 행태로 보일 뿐이다. 도덕적으로 보더라도 그 동안 16대 국회는 온갖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부패 집단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과연 이들이 탄핵소추를 할 자격이 있는지 부터 의심스럽다.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 역시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결국 국회 다수파는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 어리석은 짓을 한 것에 불과하다.

탄핵소추 가결 이후 민심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에 대한 반대 여론을 곧 자신에 대한 지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탄핵 반대여론은 탄핵이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민의를 말해주는 것을 뿐, 대통령이 지금까지 수행해 온 정책에 대한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 후 터져 나온 측근·대선자금 비리, 방향성 없고 미숙한 국정운영 등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이 다수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겸허히 자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서서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에 대한 항의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민주주주의 위기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순수한 의사표출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위기 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이를 초래한 정치권이 먼저 나서야 한다. 국회가 현 사태를 방치하고 계속 당리당략에만 골몰한 채 그 동안 우리가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면 국민들은 이를 용납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모든 책임을 현재의 정치권 인사들에게 돌아가리라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국회는 탄핵소추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앞에 사과하라.

2004년 3월 25일 대통령 탄핵소추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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