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문 전문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에게 고함

지금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참상은 여러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지난 18일, 공수특전단들의 세계 역사상 없는 만행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성인들을 미치고 말게 했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십시오. 총칼 앞에 짓찢겨 죽은 자식을 안고 통곡하는 부모들이 대검에 찔려 죽고, 총상을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또한 죽어가고 있습니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특전단의 악행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오직 가슴을 치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6.25때도 이런 참혹한 살육전은 없었다고 울부짖으며, “모두 죽자!” “죽여 달라!”를 외치며 짐승 같은 계엄군과 맨몸으로 싸웠습니다. 악몽의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도청 앞 광장의 금남로에는 특전대의 총칼에 무참히 죽음을 당한 억울한 주검들이, 광주를 사수하기 위해 나선 학생·교수·시민들의 절규와 통곡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곳에서 내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관망만 하고 있다면, 도대체 학문이, 교육·양식이, 지식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 나라의 운명이,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더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6.25동란에서도, 베트남전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참혹한 현실을 목전에 두고 지성인 여러분들은 어찌 침묵하고 모른체 할수 있단 말입니까?

광주시민 모두가 분노에 끓어 극한상황에 이르게 된, 무자비하고 형언할 수 없는 학살 현장의 사실을 우리 모두 통감합시다. 그리고 전두환에 의한 계엄사령부가 양심의 소리에 따라 행동한 학생, 교수, 시민을 폭도로 몰아 또다시 학살을 감행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 광주시민 모두가 원하는 것은 사태의 수습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을 관철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 교수, 모든 지식인들의 결의는 흥분의 결과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양보할 수 없는 결의입니다. 광주참상의 일주일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것이 반민족적인 현 집권자의 태도와 행위에 대해서 죽음을 건 대결이라는 사실을 천명합니다.

이러한 경의의 전달이 일체 통제된 지금, 우선 엄청난 이 사태의 원인과 진실을 밝혀내는 투쟁이 언론 지성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명백한 사실에 대해 지성인다운 태도와 민주시민으로서의 행동이 전격적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식량과 연탄의 공급이 의도적으로 차단되고 혈액공급도 완전 중단된, 고립된 우리 광주의 시민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한시가 절박합니다.

민주시민이여! 민주화를 위해, 우리의 삶을 위해 일어섭시다!

1980년 5월 24일

전남대학교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