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문 전문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우리들 뜻을 같이 하는 1백34명 일동은 민주발전에 대한 과도정부의 모호한 태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경제위기, 그리고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항의시위에 다만 강압적으로 맞서고 있는 당국의 무능무책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

오늘의 난국은 기본적으로 지난 19년간 독재정권의 반민중적인 경제시책과 강권정치의 소산이다. 이는 민주발전을 저해하는 비상계엄령의 장기화로 빚어진 필연적인 사태 악화이다. 만약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발전적 조치를 과정(過政)당국이 하루 빨리 취하지 않는다면 정국불안에 경제적 위기까지 겹쳐 회복할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에 우리는 오늘의 시국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몇 가지 당면책을 제시코자 한다

1. 비상계엄령은 즉각 해제되어야 한다. 비상계엄령은 10·26, 12·12사태 등 전적으로 집권층의 내부사정에 의해 선포된 것으로 이는 분명히 위법일 뿐만 아니라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 최규하 과도정권은 평화적 정권이양의 시기를 금년 안으로 단축시켜야 하며 그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현과정은 의당 폐기될 유신헌법의 절차에 의한 시한적 정 권으로서 명분면에서 보나 체질면에서 보나 허약하여 난국의 극복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현과정이 개헌에 관여하는 것은 명분 없는 개입이므로 이를 반대한다. 국회의 개헌심의라는 정권야욕에 사로잡힌 작태를 청산하고 민중의 의사를 올바로 반영하여야 한다.

1. 학원은 병영적 성격을 일체 청산하고 학문의 연구와 발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같은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의 자율적 민주화 운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사학에 뿌리 박은 족벌재단, 교수재임용제 등 학원의 민주화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독소적 운영방식과 제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1. 언론의 독립과 자유는 민주발전에 가장 불가결한 요소로서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인들은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고 특히 동아·조선 두 신문사는 부당하게 해직시킨 자유언론기자들을 전원 지체없이 복직시켜야 한다. 그들의 복직 없는 자유언론 표방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우리는 필요한 경우 성토, 집필거부, 불매운동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그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운동을 벌일 것이다.

1. 일터를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거나 기아임금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을 위한 시급한 생활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근로자들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대기업 편중의 지원정책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시급히 구제·육성되어야 한다. 저곡가정책으로 영농의욕을 잃은 농민들에 대한 정책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1. 일인독재의 영구화로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많은 민주인사에 대한 석방·복권·복직조치는 지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1.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보안사령관직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오늘의 난국은 국민의 자발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이 정당한 요구가 외면되고 강권정치가 계속 자행된다면 과도정권은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역사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